서재/고전문학

[마의 산(상)] 토마스 만. 을유문화사.

리노타호 2025. 9. 2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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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개체로서 자신의 개인적 생활을 영위할 뿐 아니라, 의식하든 안 하든 간에 자신의 시대와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생활을 영위해 간다. 우리는 자신의 존재의 보편적이고 비개인적인 토대를 무조건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자명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선량한 한스 카스토르프가 실제로 그랬듯이 개개의 경우 이에 대해 비판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러한 토대에 결함이 있는 경우 우리는 자신의 정신적 건강이 막연히 침해받는다고 느낀다. 개개인에게는 여러 가지로 개인적인 목표, 목적, 희망 및 전망이 눈앞에 아른거려 이러한 것들에서 가일층 노력하고 활동하겠다는 원동력을 얻어 낸다. 하지만 우리 주위의 비개인적인 것 , 즉 시대 자체가 겉으로 보기에 아무리 분주하게 움직인다 하더라도 요컨대 거기에 희망이나 전망이 결여되어 있다면, 시대가 우리에게 희망도 전망도 없으며 어찌할 바 모르는 것으로 남몰래 인식시켜 주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모든 노력과 활동이 지닌, 개인적인 의미 이상의 궁극적이고도 절대적인 의미를 묻는 질문에 시대가 공허한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좀 더 솔직한 인간성을 지닌 사람의 경우 그러한 사태로 인한 모종의 마비 작용은 거의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마비 작용은 개인의 정신적이고 윤리적인 부분에서 곧장 육체적이고 유기체적인 부분으로 파급될지도 모른다. 시대가 '무엇 때문에' 라는 질문에 만족할 만한 답변을 주지 않는데도, 꼭 필요한 정도를 넘어서는 대단한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으려면 영웅적 속성인 흔히 볼 수 없는 정신적 고독과 자주성, 또는 식을 줄 모르는 활력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한스 카스토르프에게는 두 가지 중에 어느 것도 없었다. 정말 존경할 만한 의미에서긴 하지만, 그런 점에서 그는 역시 평범하다고 말할 수 있다. (67-68)

 

한스 카스토르프는 이 말을 듣고 그저 선량하게 웃었을 뿐 화가가 되겠다는 과대망상을 품거나 화가가 되어 굶어 죽겠다는 생각을 한시도 품어 본 적이 없었다. (69)

 

엄밀히 말해 낯선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간다는 것, 비록 힘들기는 하지만 그것에 적응하고 익숙해지는 것에는 색다른 묘미가 있다. 적응하고 익숙해지는 것 자체를 주된 목적으로 삼으며, 가까스로 이에 성공하자마자, 또는 그런 후에 곧 다시 이를 포기하고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에는 무언가 색다른 맛이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은 것을 삶의 주된 흐름에서 중간 휴식이나 막간으로, 그것도 '휴양'이라는 목적으로 끼워 넣는다. 즉 인간이라는 유기체가 하루같이 단조로운 생활을 하는 것에 물들고 무기력해지며 무감각해질 우려가 있거나, 이미 그러기 시작하는 경우 이를 쇄신하고 혁신할 필요가 생기게 된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똑같이 정해진 생활을 계속하는 경우 유기체가 이처럼 무기력해지고 무감각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것은 세파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동안 정신과 육체가 피곤해지고 마모되어서 그렇다기보다는 (이 경우에는 간단히 쉬는 것 만으로도 몸이 회복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신적인 것, 즉 시간의 체험에 기인하다. 매일매일이 똑같은 생활을 함으로써 우리가 시간을 체험하지 못하게 될 위험성이 있고, 그 시간의 체험은 생활 감정 자체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한쪽이 약화되면 다른 쪽도 이에 따라서 딱하게도 손상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루하다는 현상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잘못된 생각이 만연해 있다. 대체로 내용이 재미있고 신기한 경우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 즉 시간이 짧아진다고 생각하는 반면 단조롭고 내용이 없는 경우는 시간이 잘 가지 않고 더디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반드시 올바른 견해라고는 할 수 없다. 내용이 없고 단조로운 것은 사실 순간과 시간의 흐름을 더디게 하고 '지루하게' 만들지도 모르나, 아주 커다란 시간의 단위일 경우에는 이를 짧게 하고, 심지어 무(無) 같은 것으로 사라지게 한다. 이와 반대로 내용이 풍부하고 재미있는 경우는 시간과 나날이 짧게 생각되고 훌쩍 지나가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시간 단위를 아주 크게 하여 생각해 보면 그럴 경우 시간의 흐름에 폭, 무게 및 부피가 주어진다. 그리하여 사건이 풍부한 세월은, 바람이 불면 휙 날아갈 것 같은 빈약하고 내용이 없으며 가벼운 세월보다 훨씬 더 천천히 지나간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루하다고 말하는 현상은 생활의 단조로움으로 인한 시간의 병적인 단축 현상이다. 그리하여 나날이 하루같이 똑같은 경우 오랜 기간이 깜짝 놀랄 정도로 조그맣게 오그라드는 것이다. 매일 똑같은 나날이 계속된다면 그 모든 나날도 하루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매일매일이 완전히 똑같다고 한다면 아무리 긴 일생이라 하더라도 아주 짧은 것으로 체험되고, 부지불식간에 흘러가 버린 것처럼 된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시간 감각이 잠들어 버리거나 또는 희미해지는 것이다. 젊은 시절이 천천히 지나가는 것으로 체험되고, 나중의 세월은 점점 더 빨리 지나가고 속절없이 흘러간다면, 이런 현상도 익숙해지는 것에 기인한다. 다른 생활에 새로이 적응하는 것이 우리의 삶을 유지하고, 우리의 시간 감각을 새롭게 하며, 우리의 시간 체험을 갱신하고 강화하며 더디게 하여 이로써 우리의 생활 감정을 새롭게 하는 유일한 방법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장소와 공기를 바꾸고, 온천 여행을 하는 목적도 이 때문으로, 기분 전환과 부수적 사건을 통해 심신의 회복을 꾀하는 것이다. 새로운 곳에 가면 처음 며칠, 가령 6일 내지는 8일 정도 되는 처음 며칠은 젊은 날처럼 힘차고 활기차게 진행된다. 그러다가 그 생활에 '익숙해짐'에 따라서 점점 시간이 눈에 띄게 단축된다. 삶에 집착하거나, 더 정확히 말해서 삶에 집착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매일매일이 다시 가벼워져서 후딱 지나가기 시작하는 사실을 감지하고 섬뜩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령 4주간의 마지막 주는 소름끼칠 정도로 빨리 후딱 지나가 버리는 것이다. 물론 시간 감각의 쇄신은 막간 여행이 끝난 후에도 효력을 미쳐, 일상생활로 돌아간 뒤 새로이 효력을 발휘한다. 기분 전환을 한 후 집에서 보내는 며칠 동안은 역시 다시 새로워져, 폭넓고도 활기차게 체험된다. 하지만 이런 효력은 며칠간만 지속될 뿐이다. 일반적으로 외지에서보다 집에서 더 빨리 생활에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노령으로 시간 감각이 벌써 무뎌졌거나, 또는 -애당초부터 생활력이 약하다는 징조이지만- 원래부터 왕성하게 발달되지 않은 경우에는 시간 감각이 금방 다시 잠들어 버린다. 그리고 하루만 지나도 벌써 마치 집을 떠나지 않았던 양 생각되고, 여행이 하룻밤의 꿈처럼 생각된다. (201-204)

 

인류는 암흑, 공포 및 증오에서 출발하였지만, 동감, 내면적 광명, 선과 행복이라는 최종 목표를 향하여 앞으로 나아가는 빛나는 도정에 있다는 것이다.  (300)

 

하지만 그는 여러 가지로 실험을 해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라는 단어 그대로의 의미에서 이를 좋게 생각하여 감화를 받아 볼 작정이었다. 그리하여 세템브리니 식의 가치 부여에 반대하는 자신의 경건성과 취향이 제기하는 항의를 꾹 누르고, 자신에게 신성 모독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대담함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고, 자신에게는 황당무계한 것이 적어도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대범함과 고매함의 과잉으로 받아들여졌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세템브리니 할아버지가 바리케이드를 '민중의 옥좌'라고 선언했다면, '시민의 창을 인류의 제단에 바친다'는 표현도 아무렇지 않게 통용되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에서 말이다. (301)

 

기다린다는 것은 지루하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이는 그렇기도 하지만 또한 짧기도 하다. 긴 시간을 그 자체를 위해 살거나 이용하지 않고 기다림이 긴 시간을 집어삼킬 때 말이다. 오직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인간의 소화 기관이 이용 가치가 있는 음식물의 영양가를 소화하지 않고 대량으로 걸러 보내는 대식가와 같다고 말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이 인간을 더 강하게 하지 못하는 것처럼, 기다리기만 한 시간은 인간을 늙게 만들지 않는다. 물론 순전히 기다리기만 할 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경우에는 실제로는 일어날 수 없겠지만 말이다. (460)

 

이것이 말하자면 원죄였다. 유기체의 질병이란 자신의 육체성이 취한 듯이 고조되고 방종한 형태로 지나치게 강조되는 현상이듯이, 무기물에서 유기물이 생겨나는 두 번째의 우연 발생도 물질성이 심히 고조됨에 따라 의식을 갖게 되는 것에 불과했다. 이처럼 생명이란 순결을 잃은 정신이 모험을 겪는 도상에서 그다음에 제일보를 내딛는 것이며, 순순히 자극을 받아들일 태세가 되어 있는 물질이 자극에 눈뜨게 되자 부끄러워 하며 열을 내는 것에 불과했다. (544)

 

"아니야, 클라브디아, 너는 지금 자신이 하는 말이 사실이 아니란 걸 알고 있어. 확신도 없이 그냥 말하고 있어. 나는 알아, 내 몸의 열, 몹시 지쳐 있는 심장의 고동, 팔다리의 오한, 이런 것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한스 카스토르프는 입술을 떨면서 창백한 얼굴을 더욱 깊숙이 그녀 쪽으로 기울였다. "이것은 다름 아닌 너에 대한 사랑 때문이야. 그래, 이 눈으로 너를 본 순간 내 마음을 사로잡은 사랑 때문이야. 아니, 그보다도 너라는 걸 알아본 순간 내 마음속에 다시 살아난 사랑 때문이야. 그리고 나를 이곳에 데리고 온 것도 그 사랑이야." (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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