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비소설

[불안] 알랭 드 보통. 은행나무.

리노타호 2026. 4. 7. 20:29
반응형

 

<정의>

 지위로 인한 불안

- 사회에서 제시한 성공의 이상에 부응하지 못할 위험에 처했으며, 그 결과 존엄을 잃고 존중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현재 사회의 사다리에서 너무 낮은 단을 차지하고 있거나 현재보다 낮은 단으로 떨어질 것 같다는 걱정. 이런 걱정은 매우 독성이 강해 생활의 광범위한 영역의 기능이 마비될 수 있다.

- 불안은 무엇보다도 불황, 실업, 승진, 퇴직, 업계 동료와 나누는 대화, 성공을 거둔 걸출한 친구에 관한 신문 기사 등으로 유발된다. 질투(불안도 이 감정과 관련이 있다)를 고백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안을 드러내는 것 역시 사회적으로 경솔한 행동이며, 따라서 이 내적인 드라마의 증거는 흔치 않다. 보통 어디에 몰두한 듯한 눈길, 부서질 것 같은 미소, 다른 사람의 성공 소식을 들으 ㄴ뒤 이어지는 유난히 긴 침묵 등으로만 간간이 나타날 뿐이다.

- 우리가 사다리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가 우리의 자아상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예외적인 사람들(소크라테스나 예수)은 다르겠지만, 세상이 자신을 존중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못하면 스스로도 자신을 용납하지 못한다.

- 더욱 안타까운 것은 높은 지위를 얻기가 어려우며, 그것을 평생에 걸쳐 유지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는 점이다. 어디서 어떤 피를 가지고 태어나느냐에 따라 지위가 날 때부터 고정되는 사회가 아니라면, 지위는 우리의 성취에 달려 있다. 우리는 어리석거나 자기 자신을 잘 몰라 실패할 수도 있고, 거시 경제나 다른 사람들의 적의 때문에 실패할 수도 있다.

- 실패에서 굴욕감이 생긴다. 이것은 우리가 세상에 우리의 가치를 납득시키지 못했고, 따라서 성공한 사람들을 씁쓸하게 바라보며 우리 자신을 부끄러워할 처지에 놓였다는 괴로운 인식에서 나온다. (8-9)

 

<원인>

1. 사랑결핍

두 번째 이야기, 즉 세상이 주는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는 첫 번째 이야기보다 더 은밀하고 부끄러운 이야기다. 입에 올린다 해도 비난하거나 조롱할 때만 그러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랑은 질투심이 많거나 결함이 있는 사람들의 관심사로 여긴다. 아니면 높은 지위의 추구는 경제적 의미로만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 두 번째 사랑 이야기는 첫 번째 이야기만큼이나 강렬하며, 또 첫 번째 이야기만큼이나 복잡하고, 중요하고, 보편적이다. 그리고 이 사랑을 이루지 못할 때도 첫 번째 사랑을 이루지 못할 때만큼이나 고통스럽다. 여기에도 가슴 아픈 상처가 있으니, 그것은 세상이 이름 없는 사람으로 치부해버린 수많은 사람들의 체념에 젖은 멍한 표정이 증언하고 있다. (19)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자신의 인격을 신뢰할 수도 없고 그 인격을 따라 살 수도 없다. (23)

 

3. 기대

실제적 궁핍은 급격하게 줄어들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궁핍감과 궁핍에 대한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고 외려 늘어나기까지 했다. 중세 유럽에서 변덕스러운 땅을 경작하던 조상은 도저히 상상도 하지 못할 부와 가능성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 놀랍게도 자신이 모자란 존재이고 자신의 소유도 충분치 못하다는 느낌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55)

 

우리는 우리 자신이 같다고 느끼는 사람들만 질투한다. 우리의 준거집단에 속한 사람들만 선망한다는 것이다. 가장 견디기 힘든 성공은 가까운 친구들의 성공이다. (58)

 

이 방정식은 우리의 자존심을 높일 수 있는 두 가지 방법도 암시한다. 하나는 더 많은 성취를 거두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성취하고 싶은 일의 수를 줄이는 것이다. 제임스는 두 번째 방법의 장점을 지적한다.

"요구를 버리는 것은 그것을 충족시키는 것만큼이나 행복하고 마음 편한 일이다. 어떤 영역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면 마음이 묘하게 편해진다. 젊거나 늘씬해지려고 애쓰기를 포기하는 날은 얼마나 즐거운가. 우리는 말한다. '다행이야! 그런 환상들은 이제 사라졌어.' 자아에 더해지는 모든 것은 자랑거리일 뿐만 아니라 부담이기도 하다." (69-70)

 

근대 사회는 첫 번째 방법에서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욕망에 줄기차게 부채질을 하여 자신의 가장 뛰어난 성취의 한 부분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 부유하다고 느끼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돈을 벌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와 같다고 여겼지만 우리보다 더 큰 부자가 된 사람과 실제로나 감정적으로나 거리를 두면 된다. 더 큰 물고기가 되려고 노력하는 대신, 옆에 있어도 우리 자신의 크기를 의식하며 괴로울 일이 없는 작은 벗들을 주위에 모으는 데 에너지를 집중하면 된다.

발전한 사회는 역사적으로 볼 때 전보다 높아진 소득을 제공하기 때문에 우리를 더 부유하게 해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결과를 놓고 볼 때 우리를 더 궁핍하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무제한의 기대를 갖게 하여 우리가 원하는 것과 얻을 수 있는 것, 우리의 현재의 모습과 달라졌을 수도 있는 모습 사이에 늘 간격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원시의 야만인보다 더 심한 궁핍을 느낄 수도 있다.(78-79)

 

4. 능력주의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지게 된다. (114)

 

<해법>

1. 철학

"다른 사람들의 머리는 진정한 행복이 자리를 잡기에는 너무 초라한 곳이다." -쇼펜하우어, <소품과 단편집>

"자연은 나에게 '가난해지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다. 또 '부자가 되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자연은 나에게 '독립적으로 살라'고 간청할 뿐이다." -샹포르, <격언집>

"나를 부유하게 하는 것은 사회에서 내가 차지하는 자리가 아니라 나의 판단이다. 판단은 내가 가지고 다닐 수 있다... 판단만이 나의 것이며, 누구도 나에게서 떼어낼 수 없다." -에픽테토스, <어록> (145)

 

마찬가지로 철학은 불안도 종류에 따라 쓸모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불안 때문에 잠 못 이루며 성공을 거둔 불면증 환자들이 오래전부터 강조해왔듯이 생존에 가장 적합한 사람은 불안에 떠는 사람일 수도 있다. (150)

 

"다른 사람들이의 생각이 피상적이고 하찮다는 것, 그들의 시야가 편협하다는 것, 그들의 감정이 지질하다는 것, 그들의 의견이 빙퉁그러졌따는 것, 그들의 잘못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점차 그들의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의 의견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그들을 필요 이상으로 존중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철학적 염세주의의 중요한 모범을 보여준 아르투르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155)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무작위 집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157)

 

2. 예술

"영웅적인 삶을 살지 못한 수많은 테레사가 이 땅에 태어났다. 그들은 잘못으로 절첨된 삶을 살았으며, 이것은 영적인 숭고함이 이에 부응하지 못하는 빈약한 기회를 만나 빚어낸 결과다." (174)

 

특히 처음 생겨날 때부터 위대한 실패의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조롱이나 심판은 삼간 특별한 예술 형식이 있다. 이 형식의 장점은 파국을 맞이한 사람들 -불명예스러운 정치가, 살인자, 파산자, 감정적으로 강박감에 사로잡힌 사람- 의 행동의 책임을 면제해 주지는 않으면서도 그들에게 어떤 수준의 공감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사실 모든 인간이 마땅히 이런 공감을 받아야 하지만, 실제로 받는 일은 드물다. (190)

 

3. 정치

높은 지위를 결정하는 요인들이 계속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지위에 대한 불안을 촉발하는 요인들도 바뀌어간다. 어떤 집단에서는 짐승의 옆구리에 창을 꽂을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걱정하고, 어떤 집단에서는 전투에서 싸울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걱정하고, 어떤 집단에서는 신에게 헌신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걱정하고, 어떤 집단에서는 자본 시장에서 이윤을 끌어낼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걱정한다. (227)

 

그러나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이런 주장을 검토하면서 근대의 물질주의적 사회에는 육체적 생존의 관점에서 보자면 불필요한 것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동시에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이 실제로는 "필수품'으로 꼽히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그것들을 소유하지 않으며 ㄴ아무도 품위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으며, 따라서 심리적으로 편안한 생활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232)

 

"사람은 종자를 여럿 끌고 다니고, 아름다운 궁에 살고,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막대한 수입을 올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두 그를 둘러싼 것이지 그의 안에 있는 것은 아니다.. 죽마를 떼어내고 그의 키를 재보라. 부와 장식을 벗기고 벌거벗은 몸을 보라.. 그에게는 어떤 종류의 영혼이 있는가? 그의 영혼은 아름다운가? 그 영혼은 능력이 있고, 행복하게 갖출 것을 다 갖추고 있는가? 그 영혼의 부는 자신의 것인가 아니면 빌려온 것인가? 운은 관계가 없는가? ... 이것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 인간들 사이의 엄청난 거리르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238-239)

 

루소는 세계의 역사가 야만에서 출발하여 유럽의 훌륭한 작업장과 도시로 진보해왔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박하게 살기는 했지만 우리의 요구를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특권적 상태로부터 우리 자신의 인격과는 거의 관련이 없는 생활 방식들에 선망을 느끼는 상태로 퇴보해왔다고 말한다. 과학기술에서 뒤졌떤 선사시대에는 인간이 루소가 말하는 자연 상태에서 살았는데, 이때는 사람들이 숲에 살면서 장을 보지도 신문을 읽지도 않았다. 루소는 이 시기에는 사람들이 자신을 더 쉽게 이해했으며, 만족스러운 삶의 특징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고 상상한다. 즉 가족을 사랑하고, 자연을 존중하고, 우주의 아름다움에 경외감을 느끼고, 다른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품고, 음악과 소박한 오락을 즐기는 것이 그런 특징이었다. 그러나 근대의 상업적 "문명"은 우리를 이런 상태로부터 떼어냈으며, 우리의 풍요의 세계에서 선망과 갈망에 사로잡혀 고통을 겪게 되었다는 것이다. (240-241)

 

지위와 관련된 근대의 이상에 대한 공격의 핵심은 이것이 우선순위를 엄청나게 왜곡하여, 물질적 축적 과정을 가장 높은 수준의 성취로 치켜세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자아상을 진실되고 폭넓게 규정한다면, 물질적 축적은 우리 삶의 방향을 규정하는 여러 가지 가운데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249)

 

수치감에 싸여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을까[여자라는 것일까/피부색이 검다는 것일까/돈이 없다는 것일까]?" 하고 묻는 대신 "나를 비난하다니 다른 사람들이 틀렸거나, 부당하거나, 비논리적인 것이 아닐까?"하고 묻게 된다. 이것은 자신의 무죄에 대한 확신에서 나오는 질문이 아니라, 자연주의적인 관점이 이야기하는 것과는 달리 제도, 관념, 법은 어리석고 편파적이라는 인식에서 나오는 질문이다. (259-260)

 

이해는 사회의 이상들을 바꾸거나 그것과 씨름해보는 첫 단계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것만으로도 죽마를 신고 다니는 사람들을 아무런 회의 없이 무조건 숭배하고 존경하는 경향이 조금이라도 줄어든 세계를 만드는 데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될 것이다. (266)

 

4. 기독교

조건부 사랑에 흥미를 잃게 되면, 그것을 얻기 위해 우리가 추구하던 많은 것들에 대한 흥미도 줄어든다. 부, 위신, 권력으로는 우리의 지위가 유지되는 한에서만 지속되는 사랑밖에 얻을 수 없다면, 그렇게 살다가는 어린 아이처럼 위로를 갈망하며 무방비 상태에서 헝클어진 모습으로 인생을 끝내야 할 운명이라면, 우리가 지위를 얻든 잃든 지속될 수 있는 관계에 에너지를 집중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생기는 셈이다. (275-276)

 

따라서 기독교 도덕가들은 불안을 달래려면 낙관적인 사람들의 가르침과는 반대로 모든 것이 최악으로 흘러간다고 강조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천장은 무너져 내리고, 은행은 폐허가 되고, 우리는 죽고,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은 사라지고, 우리가 이룬 것들, 심지어 우리의 이름마저 땅에 짓밟힐 것이다. 이런 생각이 위로가 된다면, 그것은 우리가 본능적으로 야망이 원대할수록 현실을 더 비참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지위에 대한 우리의 하찮은 걱정을 천녀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우리 자신의 미미함을 바라보며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된다. (293-296)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느끼는 불안의 좋은 치유책은 세계의 거대한 공간을 여행하는 -실제로 똔는 예술작품을 통하여- 것일 수도 있다. (297)

 

5. 보헤미아

지위에 대한 불안의 성숙한 해결책은 우리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느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산업가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고 보헤미안으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으며, 가족으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고 철학자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다. 누구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이다. (355)

 

지위에 대한 불안이 아무리 불쾌하다 해도 그 불안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좋은 인생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실패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창피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야심을 품고, 어떤 결과들을 선호하고, 자신 외의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는 데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결과일 뿐이기 때문이다. 지위에 대한 불안은 성공적인 삶과 성공적이지 못한 삶 사이의 공적인 차이를 인정할 경우 치를 수밖에 없는 대가다. (356)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는 지위의 위계를 없애려 하지 않았다. 그들으 다수의 가치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가치, 다수의 가치를 비판하는 새로운 가치에 기초하여 새로운 위계를 세우려 했다. 이 다섯 집단은 성공과 실패, 선과 악, 수치와 명예의 구분 자체는 유지하면서, 무엇이 각 항목에 속해야 하는지를 재규정하려 했다. (356-357)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각 세대마다 높은 지위에 대한 지배적인 관념들을 충실하게 따르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따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 그럼에도 패자나 이름 없는 사람이라는 잔인한 규정과는 다른 규정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정당성을 얻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들 덕분에 우리는 삶에서 성공을 거두는 데는 하나 이상의 길, 판사나 약사의 길과는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위로와 확신을 얻을 수 있다. (357)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