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에 대해서는 말하는 것도 듣는 것도 싫다고 말하면서, 나도 모르게 나의 '귀중한 체험담'을 말해 버렸는데, 그러나 내 전쟁의 추억 속에서 조금이라도 말하고 싶은 것은 대강 이 정도이고, 나머지는 언젠가의 그 시처럼,
작년은 아무 일도 없었다.
재작년은 아무 일도 없었다.
그 전년도 아무 일도 없었다.
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그저 시시했고, 내게 남아 있는 것은 이 지카타비 한 켤레, 라는 허무함이다. (53)
"어머니, 나 말이지, 얼마 전에 생각한 건데, 인간이 다른 동물과 전혀 다른 점은 뭘까, 말도 지혜도, 사고도, 사회 질서도, 각각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다른 동물들도 모두 가지고 있잖아? 신앙을 가지고 있을지도 몰라.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으스대지만, 다른 동물과의 본질적인 차이가 없는 것 같잖아? 그런데, 어머니, 단 하나 있어. 모르시겠죠. 다른 생물에게는 절대로 없고, 인간에게만 있는 것. 그건 말이지, 비밀, 이라는 거야. 어때?" (63-64)
내가 조숙한 척했더니, 사람들은 나를 조숙하다고 얘기했다. 내가 게으름뱅이인 척을 했더니, 사람들은 나를 게으름뱅이라고 얘기했다. 내가 소설이 잘 써지지 않는 척을 했더니, 사람들은 나를 잘 못 쓰는 사람이라고 얘기했다. 내가 거짓말쟁이인 척했더니, 사람들은 나를 거짓말쟁이라고 얘기했다. 내가 부자인 척했더니, 사람들은 나를 부자라고 얘기했다. 내가 냉담한 척했더니, 사람들은 나를 냉담한 녀석이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괴로워서 나도 모르게 신음했을 때, 사람들은 내가 괴로운 척한다고 얘기했다.
아무래도 엇갈린다. (82)
차라리 과감하게 본업인 불량소년이 되어 버리면 어떨까. 그러면, 동생도 오히려 편해지지 않을까.
불량하지 않은 인간이 있을까, 라고 그 노트북에 쓰여 있었지만, 그러고 보니 나도 불량, 숙부님도 불량, 어머니조차 불량하게 여겨진다. 불량이란, 상냥하다는 게 아닐까. (95)
6년 전 어느 날, 저의 가슴에 아련하고 희미한 무지개가 걸렸는데, 그것은 연애도 사랑도 아니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그 무지개의 색채는 더욱 선명해져서,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그것을 놓친 적이 없었습니다. 소나기가 걷힌 하늘에 걸린 무지개는 이윽고 허망하게 사라져 버리지만, 사람의 가슴에 걸린 무지개는 사라지지 않은 듯합니다. (100)
부디 이쪽으로 와주세요. 한번 뵙고 싶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만나면 알게 될 일, 제 양쪽 입꼬리 끝에 생긴 희미한 주름을 봐주세요. 세기의 슬픔이 담긴 주름을 봐주세요. 저의 어떤 말보다 제 얼굴이 제 심정을 분명히 당신에게 알려드릴 거에요. (116)
파괴는 딱하고 슬프고 그리고 아름다운 것이다. 파괴하고 다시 세우고, 완성하려는 꿈. 그리고 일단 파괴하면, 영원히 완성되는 날이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그럼에도 연모하는 사랑 때문에,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혁명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로자는 마르크시즘에 대하여, 슬프고 한결같은 사랑을 하고 있었다. (134-135)
인간은 사랑과 혁명을 위해 태어난 것이다.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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