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고전문학

[데미안] 헤르만 헤세. 민음사.

리노타호 2026. 8. 4.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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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면서 자연의 뜻을 실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이로우며 충분히 주목할 만한 존재이다. 누구 속에서든 정신은 형상이 되고, 누구 속에서든 피조물이 괴로워하고 있으며, 누구 속에서든 한 구세주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다. (10)

[두 세계]
이제 내 범행이 절도였든 거짓말이었든(나는 하느님과 목숨을 걸고 거짓 맹세를 하지 않았던가?)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나의 죄악은 이것이냐 저것이냐가 아니었다. 나의 죄악은 내가 악마에게 손을 내밀었다는 사실 자체였다. 나는 왜 함께 갔던가? 나는 왜 일찍이 아버지의 말보다 크로머의 말에 더 귀를 기울였던가? 나는 왜 저 도둑질 이야기를 지어내고 영웅적 행위라도 되는 양 범행을 뽐냈을까? 이제 악마가 내 손을 잡았다. 이제 적이 나를 뒤쫓고 있었다. (26)

여기까지 이야기한 이 모든 체험에서는 이 순간이 중요하다. 그것은 아버지의 신성함에 그어진 첫 칼자국이었다. 내 유년 생활을 떠받치고 있던, 그리고 누구든 자신이 되기 전에 깨뜨려야 하는 큰 기둥에 그어진 첫 칼자국이었다. 우리 운명의 내며적이고 본질적인 선은 아무도 보지 못한 이런 체험들로 이루어진다. 그런 칼자국과 균열은 다시 늘어난다. 그것들은 치료되고 잊히지만 가장 비밀스러운 방 안에서 살아 있으며 계속 피 흘린다. (28)

죽음의 쓴맛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탄생이니까, 두려운 새 삶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니까. (29)

[예수 옆에 매달린 도둑]
누구나 이런 어려움을 겪는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것은 인생의 분기점이다. 자기 삶의 요구가 가장 혹심하게 주변 세계와 갈등에 빠지는 지점, 앞을 향하는 길이 가장 혹독한 투쟁으로 쟁취되어야 하는 지점이다. 많은 사람이 우리의 운명인 이 죽음과 새로운 탄생을 경험한다. 삶에서 오로지 한 번, 유년이 삭아 가며 서서히 와해될 때, 우리의 사랑을 얻었던 모든 것이 우리를 떠나가려 하고 우리가 갑자기 고독과 우주의 치명적인 추위에 에워싸여 있음을 느낄 때 경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많은 사람이 영원히 이 절벽에 매달려 있다. 돌이킬 수 없는 지나간 것에, 잃어버린 낙원의 꿈에, 모든 꿈 중에서 가장 나쁘고 가장 살인적이 ㄴ그 꿈에 한평생 고통스럽게 들러붙는다. (67)

"... 성서 이야기에서는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자주 손해를 보지. 어쩌면 그도 카인의 후예일 거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니?" (82)

그것은 실로 바로 나 자신의 생각, 나 자신의 신화, 두 세계 혹은 세계의 두 절반,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에 관한 생각이었다. 나의 문제가 모든 인간의 문제, 모든 삶과 생각의 문제라는 통찰이 갑자기 신성한 그림자처럼 나를 뒤덮었다. 그리고 가장 나다운 개인적인 삶과 생각이 얼마나 깊이 거대한 사유의 영원한 흐름에 관여되어 있는가를 보고 갑자기 느끼게 되자 두려움과 경외심이 나를 압도했다. 그 통찰은 즐겁지 않았다. 확인해 주고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었는데도 왠지 즐겁지 않았다. 그 통찰은 가혹했다. 떫은맛이었다. 그 안에는 일말의 책임의식이, 이제는 어린아이일 수 없다는, 홀로 서 있다는 울림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84)

"너더러 누굴 쳐 죽이라든지 소녀를 강간 살인하라는 건 물론 아니야, 아니지. 하지만 '허용되었다', '금지되었다'라는 것이 사실 무엇인지 통찰할 수 있는 곳에 넌 아직 가 보지 못했어. 비로소 하나의 진실을 느낀 것뿐이야. 다른게 또 올거야. 그것에 자신을 내맡겨 봐! 예를 들면 넌 일 년 전쯤부터 네 속에서 다른 모든 충동보다 강한 한 가지 충동을 느끼고 있을 거야. 그런데 그건 '금지된' 것으로 간주되지. 그리스인들 그리고 다른 많은 민족들은 반대로 이 충동을 신성하게 여기고 큰 축제를 벌이며 그것을 기렸어. '금지되었다'라는 것은 그러니까 영원하지 않아, 바뀔 수 있는 거야. ..."(85)

"똑똑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건 전혀 가치 없어, 아무 가치도 없어.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나는 건 죄악이지. 자기 자신 안으로 완전히 기어들 수 있어야 해, 거북이처럼." (88)

[베아트리체]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이 고통들을 겪으며 상당한 쾌감을 느꼈다. 그토록 오래 내가 맹목적이고 둔감하게 웅크리고 있었기에, 그토록 오래 내 마음은 침묵하고 가난해져 구석에 앉아 있었기에 이러한 자기 고발, 이 전율, 이 모든 영혼의 불쾌한 감정도 환영받았다. 감정이 있었다! 불꽃이 솟았다. 그 속에서 심장이 경련했다! 나는 비참의 한가운데서 해방이자 봄 같은 무엇을 혼란스럽게 느꼈다. (100)

그러나 이제 나는 무언가를 사랑하고 숭배해야 했다. 다시 하나의 이상을 가졌던 것이다. 삶은 다시 예감과 비밀에 찬 영롱한 여명이었다. 그 점이 나를 조소에 무관심하게 만들었다. 나는 다시 나 자신에게로 편안히 안착했다. 비록 오로지 존경하는 영상의 노예이자 봉사자가 되어서였지만. (107)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122)

그러나 늘 그랬다. 하나의 상태를 좋아하게 되자마자, 하나의 꿈이 편안해지자마자 그것은 어느새 벌써 시들고 흐려졌다. 부질없다, 그 뒷모습을 보며 탄식함은! (128)

[야곱의 싸움]
피스토리우스가 나직이 말했다. "우리가 보는 사물들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과 똑같은 사물들이지. 우리가 우리 마음속에 가지고 있지 않은 현실이란 없어.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토록 비현실적으로 사는 거지. 그들이 바깥에 있는 물상들만 현실로 생각해서 마음속에 있는 그들 자신의 세계가 전혀 발언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야. 그러면서 행복할 수는 있겠지. 그러나 일단 다른 것을 알면 그때부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길을 가겠다는 선택이란 없어져 버리지. 싱클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길은 쉬워. 우리의 길은 어렵고. 우리 함께 가 보세." (150)

[에바 부인]
지금 연대라며 저기 저러고 있는 것은 다만 패거리 짓기일 분이야. 사람들이 서로서로에게로 도피하고 있어. 서로가 두렵기 때문이야. 신사는 신사들끼리, 노동자는 노동자들끼리, 학자는 학자들끼리! 그런데 그들은 왜 불안한 걸까?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한 거야. 그들 모두가 그들의 삶의 법칙들이 이제는 맞지 않음을, 자기들은 낡은 목록에 따라 살고 있음을 느끼는 거야. 종교도 도덕도 그 모두가 이제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에 맞지 않아. (180)

그런데 나는 이제 매혹되어 인식했다. 그 모든 것이 다만 엎질러지고 어두워져 버렸단 것을, 그러나 유년의 행복을 포기하고 자유로워진 사람도 세계가 빛을 뿜는 모습을 바라보고 어린이다운 시각의 내밀한 전율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을. (184)

"그래요. 자신의 꿈을 찾아내야 해요. 그러면 그 길이 쉬워지지요. 그러나 영원히 지속되는 꿈은 없어요. 어느 꿈이든 새 꿈으로 교체되지요. 그러니 어느 꿈에도 집착하면 안 돼요." (188)

"당신이 믿지 않는 소망들에 몰두해서는 안 돼요. 당신이 무얼 원하는지 나는 알아요. 그런 소망들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니면 완전히 올바르게 소망하든지요. 일단 당신 자신의 마음속에서 성취를 확신하며 소망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성취도 있는 거예요. 그러나 당신은 소망하고, 다시 후회하고 그러면서 두려워하지요. 그 모든 것을 극복해야만 합니다. 동화 하나를 들려드리지요." (196)

그리고 그는 그저 한 여자를 얻는 대신 마음속에 온 세계를 소유했다. 하늘의 별 하나 하나가 그의 안에서 불타고 그의 영혼을 통해 기쁨의 빛을 뿜어냈다. 그는 사랑했고 그러면서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하면서 자신을 잃어버린다. (198)

[종말의 시작]
근원적인 느낌, 가장 거친 느낌들도 적에게 향해 있지 않았다. 그들의 유혈의 위업은 오로지 내면의, 그 자체 안에서 산산이 파열된 영혼의 발산이었다. 새로 태오날 수 있도록 광분하여 죽이고, 말살하고, 죽으려는 영혼의 발산이었다. 거대한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하고 있었다. 알은 세계였고 세게는 짓부서져야 했다.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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